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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잃어버린 갯골 습지 (2)

기사입력 2025-05-01 14:59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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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갯골 습지 (1) -3월 28일 ☜
 
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갯골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서해바다를 끼고 형성된 지리적인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동고서저의 지형을 갖고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은 주로 서쪽에, 그리고 물이 흐르는 강변에 주거지를 만들어 살았다. 또한 식량을 얻기 위한 농지를 개발을 했으며, 그래도 부족한 식량을 위해서 갯벌까지 농지로 개간해야 했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바닷물을 막아서 농지를 만드는 일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시흥 지역에서 그 대표적인 것이 호조벌이다. 조선 정부가 1721(경종 1년)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까지를 막아서 미산리, 은행리, 안현리, 매화리, 연성리 사이에 너른 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이 지역 1차 개간 사업이었고 상당한 농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시흥 갯골은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대규모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포동과 장곡동, 월곶동 사이의 너른 갯골과 습지를 염전으로 개발하는 사업에 의해서다. 일제가 1934년부터 1937년 사이에 시흥의 갯벌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염전으로 개발해서 천일염을 생산했고, 그것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식민지에서 수탈하는 목록 가운데 소금까지 더한 것이다. 그만큼 서해 바닷물과 갯벌이 만들어주는 소금이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흥의 갯벌이 사라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갯골역시 그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운 모습을 잃게 되었다. 염판과 창고, 수송을 위한 천로까지 부대시설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은 갯골을 매립했고, 큰물만 드나들 수 있도록 보통천과 은행천으로 이어지는 큰 갯골만 남겼다. 
  염전으로 개발되면서 남겨진 갯골 습지는 해방 이후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개간되면서 갯벌은 완전히 사라졌다. 모두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필요한 용도로 개발이 된 셈이다. 당시 필요는 식량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모두 논으로 개발했다. 
  그런데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전체 식량 자급률은 49%(2023년 통계)이고, 그 중에 곡물 자급률은 22.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쌀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생활이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매년 생산되는 쌀이 창고에 쌓이게 됨으로 쌀 가격이 생산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결국 논이 밭보다 비쌌던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쌀 생산을 위해서 논을 개간하는 것은 그만두고 있는 논마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고민해야 하고, 실제로 전국에는 방치된 논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개간 당시의 필요와 현재의 필요가 경제적,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서 달라졌다. 그 결과 비록 용도는 달아졌어도 ‘습지’라고 하는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었던 논과 염전도 사라지게 되었다. 무논도 기본적으로 습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유엔기구의 입장이다. 염전도 다르지 않다. 
  쌀이 주식인 나라이지만 쌀 소비가 급격하게 줄었고, 소금 역시도 수입과 생산 방법의 다변화, 그리고 생산단가 등의 문제로 수도권 주변의 염전이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다른 필요를 위해서 ‘습지’라고 하는 정체성과 그 가치는 재고할 여지가 없다는 듯 생각조차 하지 않고 새로운 필요를 위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미 시흥 염전의 절반은 골프장이 되었다. 또한 그 중심으로 제3경인고속화 도로가 지나갔고, 39번 도로가 부천에서 호조벌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새롭게 만들어졌고, 하중동에서 장곡동을 지나 시화공단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도 만들어졌다. 그 덕에 호조벌과 하중동 앞 너른 들판도 중간이 잘리고 말았다. 수도권 전철인 서해선이 부천 소사역에서 안산 원시역으로 이어지는 데 포동부터 지상구간으로 만들어지면서 하중동 앞을 가로지른다. 이제는 논보다 교통 편리를 위한 시설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결국 도로와 철도가 지나면서 갯벌을 개간해서 만든 들판은 사라지고 말았다.
  봄날 무논에 심겨진 벼들이 자라서 만들어주는 푸른 들녘은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가을날 하중동에서 인천 소래포구를 향해 열린 너른 들녘은 황금빛이 일렁이는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소래포구로 지는 가을날 해넘이는 장관이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을 정취에 취할 수 있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들녘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길어지는 그림자만큼이나 넉넉한 가을의 풍요와 여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여, 아직 39번 도로가 포장이 되기 전 가족들 손을 잡고 돌장재를 넘어서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농로를 따라 갯골로 이어지는 둑방길을 걸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사방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내닫는 차량들의 행렬과 소음뿐이다. 갯벌을 개간해서 만들었던 논들은 시대에 뒤쳐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듯 겨우 논이라는 정체성을 잇고 있다. 그곳은 밤이면 온갖 생명체들이 쉼을 얻던 곳이었지만 이제 그곳에서 쉼을 얻는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넓게 자리 잡은 골프장은 늦게까지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낮같이 밝힌 불빛이 하늘까지 지배하고 있고, 지나는 차량들과 가로등 불빛까지, 어디도 고요와 쉼을 허락하는 곳이 없다.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 사라진 갯벌과 무논, 진정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일지...? 내닫기만 하다가 멈춰야 할 곳을 못 찾고 방황하게 될 날이 오지는 않을는지?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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