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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잃어버린 갯골 습지 (4)

기사입력 2025-08-07 15:25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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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잃어버린 갯골 습지 (3) - 6월 20일 1129호 5면 


  시흥갯골, 그곳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필자의 추억 속에는 남아있다. 이 글은 그 추억을 담아내는 것이고, 그것에 담겨진 가치를 돌아보기 위한 것이며,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 돌아보아야 할 것으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갯골과 그 주변에 있었던 너른 갯벌이 크게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현재 매화동과 미산동 사이에 호조벌이 조성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721년 포동(걸뚝)에서 하중동으로 가는 돌장재(고개)까지 약 700미터 남짓한 과거 39번 도로가 곧 인공으로 만든 제방이었고, 그 안에 조성된 것이 호조벌이다. 따라서 해방 후까지도 39번 도로 남쪽, 즉 39번 도로와 염전 사이는 갯벌이었다. 1950년대까지 일제에 의해서 조성된 염전을 제외한 곳은 대부분 갯벌이었다. 그 후 나머지 갯벌은 다시 논으로 개간되면서 이 지역의 갯벌은 완전히 사라지고 수로 기능을 하는 갯골만 겨우 남겨졌다.
  이 지역에 논이 조성되던 1960년대가 필자의 기억에는 남아있다. 염전을 제외한 지역은 갯벌이었고, 일부 논으로 개간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1721년부터 내륙으로 깊숙이 형성된 갯벌이 개간되면서 사라진 갯벌이지만, 1960년대 그나마 남았던 갯벌에는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던 곳이다. 염전과 그 주변에 만들어진 저수조에서는 초파리 종류와 새우를 비롯한 망둥어, 게들이 많았고, 갯골과 갯벌에서는 갯지렁이부터 다양한 갑각류들이 먹잇감으로 풍부했기 때문에 봄철이면 산란과 육추를 위해서 많은 철새들이 찾아들었던 곳이다. 겨울에는 겨울 철새인 오리 종류들이 상당히 많이 찾아왔던 곳이다.
  당시를 기억하면 갑자기 회개하는 마음과 생존을 위해서 아이들이 갯벌을 찾던 아픈 기억이 힘들게 한다. 당시에는 어떤 새들인지 그 이름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요새 종류였다. 녀석들은 봄날이면 너른 갯벌에 그늘 한 점 없이 땡볕이 내리 쬐이는 곳에 듬성듬성 알을 낳는다. 아이들은 누가 가자고 하지 않았음에도 저마다 갯벌로 나갔다. 갯벌에 낳아놓은 알들을 모두 거둬왔다. 그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먹이사냥이었다. 그 알들은 삶아 먹거나 찜과 같은 형태로 요리가 되어 식탁에 올랐다.
  가을이 저물어 갈 즈음이면 남쪽으로 내려온 오리 종류의 철새들이 갯골을 중심으로 많이 있었다. 주말이 되면 어디에서 찾아온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미군들이 엽총을 가지고 오리사냥을 했다. 어린 우리는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엽총으로 쏴서 떨어뜨린 새들을 수집하러 뛰어다녔다. 무작정 많이 잡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수집해서 갖다 주면 한두 마리를 대가로 준다. 그것을 마당에 불을 피우고, 털을 뽑아 구워먹던 것을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갯벌에서 철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과정이 이어졌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철새들이 서식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갔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범행의 주인공이었던 당사자이기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곳에서 사라진 철새들은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림과 함께 또 다른 경쟁자 인간을 이길 수 없어서 떠나야만 했다.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한 장본인으로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당시의 환경이었지만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연히 떠난 녀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알을 훔쳐가고, 엽총을 쏘아대고, 아예 갯벌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어버렸으니 너른 갯벌이 사라짐과 함께 그곳을 서식지로 삼았던 생명체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녀석들이 번식할 수 있는 공간을 완전하게 빼앗고 말았다. 사람은 식량을 위해서 그곳을 터전으로 번식하던 철새들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다. 당연히 누구도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논을 얻었다고 하거나 개간했다고 한다. 마치 처음부터 주인 없는 땅을 찾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그곳을 터전으로 살았던 녀석들은 쫓겨났고 다시 그곳에 깃들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 갯벌은 철새들만의 터전은 아니었다. 갯벌을 터전으로 삼아 살았던 것들 가운데는 게 종류가 가장 많았다. 방게, 칠게, 수수발발이, 농게, 풀게 그리고 민챙이, 뿔고둥, 짱뚱어... 하지만 이런 것들도 모두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춘궁기를 지나려면 갯벌을 부지런히 들락거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생명체가 있으면 그것은 모두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다. 눈치를 볼 여유가 없었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이니 눈길과 손길이 빠른 사람이 차지했다. 
  생존경쟁 최상위에 있는 인간은 그곳에 있는 생명체들을 통해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끝내는 그들의 서식지마저 모두 논으로 개간하여 식량을 생산하는 기지로 삼았다. 그렇게 갯벌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었던 생명체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들은 갯골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겨우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마저 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는 시설들과 갯벌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는 도로들과 가로등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다.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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