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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잃어버린 갯골 습지 (5)

기사입력 2025-09-25 16:56 최종수정 2025-11-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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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잃어버린 갯골 습지 (4) - 8월 8일 1135호 5면

  갯골과 그 주변에 서식하고 있었던 생명체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희생물이 되어주었다. 그러한 것들 중에 먼 기억에서 불러오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갯골에 서식하고 있었던 어패류들이다. 또 하나는 갯골과 갯벌에 터를 잡고 있었던 나문재와 칠면초, 갈대와 같은 염생식물들이다. 이것은 모두 1950~60년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 살았던 갯골 주변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해서 너무나 귀한 것들이었다. 
  호조벌을 중심으로 서쪽 상류에는 계수저수지, 동쪽 상류에는 물왕저수지(물왕호수)의 수로가 각각 동과 서에서 바다로 이어진다. 그리고 호조벌 중앙에는 배수로 역할을 하는 작은 수로가 있었고, 그 수로는 하류에서 계수저수지와 물왕저수지로부터 내려가는 수로와 만난다. 그리고 그 수로들에는 전국에서 소위 태공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름하여 ‘포리수로’로 알려진 이 수로에 태공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그만큼 고기 많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태공이라고 자처하면서 ‘포리수로’를 모른다면 초보도 상초보로 낚인 찍혔다.
  지금도 그 수롯가에 앉아있던 태공들의 모습이 또렷하다. 자리가 비좁아서 낚싯줄이 엉키기도 하고, 낚시를 던지다가 옆 사람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옷이나 머리, 혹은 귀에도 바늘이 박혀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세 곳의 수로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장마철이면 생기게 되는 일이다.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리면 저수지 수문이 열리고, 주변의 넓은 지역에서 물길이 모두 이 세 수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때 인근 마을, 특히 걸뚝(포동)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족대와 그릇을 총동원해서 수로의 수문 아래쪽으로 모여들었다. 적당한 깊이, 물이 휘돌아 내려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족대질을 한다. 그러면 물고기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속에 족대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면서 물고기를 퍼 올린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퍼 올려 그릇마다 채우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드럼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나타났다. 그러면 트럭에 실려 있는 드럼통에 물고들이 가득가득 채워졌다. 여러 개의 드럼통이 이내 채워지면 트럭이 떠난다. 그렇게 물고기를 잡아준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는 일과 잡일을 맡았다. 어른들은 물고기를 잡고, 옮겨 싣는 일, 그리고 품삯과 수고비를 수금하는 일을 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얼마씩을 받고 잡은 물고기를 넘겨주었는지는 모른다. 이것은 갯골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 살았던 물고기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곳 갯골(수로)은 특별하다. 민물과 갯물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기수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어패류가 갯골에 살았다. 뱀장어, 망둥어, 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어종들이 들락거렸고, 갯골 바닥에는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조개(싸죽)가 많았다. 참게, 농게와 방게를 비롯한 게들도 많았다. 
  어디 그뿐인가? 호조벌과 개간한 논에는 가을이면 벼가 풍년이었다. 그러나 호조벌에서 벼를 베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일단 논에 물을 먼저 빼야 했다. 물이 완전히 빠진 다음 벼를 베기 전에 그릇을 가지고 논 가운데로 들어간다. 논바닥이 평평하지만 어딘가에 조금 낮은 지역이 있고, 그곳에는 물이 조금씩 남아있다. 물이 고인 곳에는 논에 살고 있던 민물새우와 갯골에서 올라온 숭어, 참게와 같은 갑각류와 물고기들이 그곳에 모여있다. 그것을 모두 그릇에 담아낸 다음 벼 베기를 시작했다. 벼를 베다가도 발에 밟히는 참게들이 많이 있었다. 그만큼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는 참게가 많이 서식했던 곳이다.
  한편 갯골과 그 주변에 서식했던 염생식물들은 봄이면 좋은 찬거리가 되었고, 가을이면 그보다 좋은 땔감이 없었다. 예를 들어서 나문재는 봄날 입맛을 돋우는 나물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칠면초는 겨울날 땔감으로 최고였다. 염분을 머금고 있으면서 줄기가 관목처럼 딱딱해서 화력이 장작과 같이 좋았다. 땔감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칠면초는 귀한 땔감이었다. 겨울날 추위를 극복하게 하고, 엿을 고을 때 장시간 물을 때야 하는 데 그만한 땔감이 없다고 할 만큼 화력과 잔불이 좋았다. 주변에 자라는 갈대도 땔감으로 한몫했다. 
  그러니 갯골이 주는 선물이 얼마나 풍성했고 귀했던가? 하지만 지금 갯골에는 그 흔적을 겨우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사라진 패류는 다시 복원조차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때 갯골 주변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모두 생명의 은인과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풍요로워졌기에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으나 잊혀진 것들도 많으니 이젠 기억  속에 갈무리되어 있을 뿐 이런가...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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