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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잃어버린 갯골 습지 (6)

기사입력 2025-11-20 15:22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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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잃어버린 갯골 습지 (5) - 9월 26일 1141호 5면

  “장엄한 소래산 정기 받은 우리 학교…” “군자봉 푸른 정기 받아 자라나는 어린이들…” 이것은 시흥시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소래초등학교와 군자초등학교 교가의 첫 소절이다. 현 시흥시 관내 초등학교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두 학교는 각각 1920년과 1923년에 개교했다. 따라서 시흥시 공적인 근대 교육의 효시는 이 두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앞선 근대 교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립학교로서 무지내교회(무지동)에서 1901년 설립했던 무지내여학교다. 이 학교는 시흥시만이 아니라 경기도 최초 근대교육시설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가 사립학교 규제법을 이용하여 폐교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시흥시 근대교육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장엄한 소래산 정기 받은 우리 학교…” 그리고 “군자봉 푸른 정기 받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담긴 소래산(蘇來山)과 군자봉(君子峰) 그리고 그에 따른 소래면과 군자면이라는 지명이 시흥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또 하나 잃어버린 갯골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현재 시흥시는 이 두개 면이 통합된 하나의 행정구역이다. 그런데 정작 소래도 군자도 사라지고 시흥이라는 명칭이 대신하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일까? 본래 이 지역의 지명은 없어지고 시흥이라는 지명이 대신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래면과 군자면이 시흥군에 편입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래 시흥은 현재 서울시로 편입된 금천구가 중심으로, 조선 후기 시흥은 한강 이남 노량진부터 안양, 군포, 과천까지를 포함한 관악산 남서부의 행정구역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군자면도 시흥군으로 편입된 적이 있다. 1973년에는 부천군의 중심이었던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하면서 부천군이 해체되고 부천군의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본래 시흥은 금천구 시흥동이 되었고, 시흥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는 시흥시는 소래면과 군자면에서 시흥임을 자처(?)하고 있는 격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시흥시는 시흥 없는 시흥인 셈이다. 지명과 고향은 정서적으로 향수를 가지게 하고, 고향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구심점이 되며,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게 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 그런데 시흥에서는 이것이 일치되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시흥 시민들 가운데는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 시흥 시민들 대부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시흥시로 승격된 이래로 내 고향 시흥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내 고향 신천리라고 하면 비록 좁은 개념이지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데 말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시흥이라는 이름이 한 몫 하는 것이리라. 현재 시흥시는 과거 소래면과 군자면 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면 시흥 시민들에게 소래와 군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마치 서울에 편입된 시흥처럼 시흥시로 편입된 소래와 군자일 뿐이다. 그마저도 군자면은 군자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겨우 명맥을 잇고 있나 소래면(읍)이라는 지명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소래 없는 인천의 소래나 시흥 없는 시흥이 되고 말았으니 정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고향은 공허하기만 하다.
  소래산과 군자봉은 지역명의 근본이었지만 정작 지금 시흥 시민들에게 그 이름은 어떤 것일까? 지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두 산을 가지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지역명이 있었지만 정작 다른 곳의 지명(地名)이 시명(市名) 되었으니, 뭔가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것일까? 
  지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지방 지명위원회(시·군·구)’와 ‘국가 지명위원회’가 있어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마련된 것은 불과 15년 정도 지난 시점이다. 그 이전에는 중앙부처에서 결정해서 대통령령으로 고시함으로써 최종 결정되었던 것 같다. 소래면과 군자면이 시흥시라는 지명을 갖게 된 것이 1973년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고, 1989년 소래읍과 군자면이 통합되어 하나의 시로 승격되면서다. 지명이 어떻게 결정되었든 그 과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래나 군자가 없는 시흥이라는 지명이 생뚱맞은 것은 아닌지? 그 덕에 정작 소래와 군자라는 지명은 사라지고 말았거나 소외되고 말았다. 군자동도 거모동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가 1994년 구사일생 살아났으니 말이다. 
  그런가하면 소래라는 지명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소래산을 공유하고 있는 인천 남동구에서 소래산과 함께 소래포구를 지역 브랜드화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인천에는 소래라는 지명이 없다. 다만 소래포구가 알려지면서 ‘소래’라고 하면 이제는 당연히 인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소래라는 지명을 “시흥 소래, 인천 소래” 구별해서 불러야 했고, 길을 그렇게 물어야 했다. 그런데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제 시흥에는 소래와 군자가 없고, 인천에는 소래라는 지명이 없으나 포구와 역,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잃어버린 갯골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지명까지도 점점 잃어가는 것이 아닌지.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거나 그래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굳이 잃어버리지 않아도 될 것까지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서 또 어떻게 바뀌어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공유할 수 있는 고향 마을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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